한국 증시 '글로벌 꼴찌'… 왜 망했나

지난해 한국 증시는 뚜렷한 부진을 보였다. 미국과 일본 주요 지수는 사상 최고가를 경험하는 동안 코스피지수와 코스닥지수는 뒤처지는 모습을 보였다. 주요국 중 가장 부진했던 것은 분명하다. 시간을 좀 더 길게 펴보면 그 실체는 더욱 명확해진다. 나스닥은 20년 전보다 9배 이상 오른 반면, S&P500은 5배, 닛케이225는 3.5배 증가했다. 하지만 코스피는 2.7배, 코스닥은 1.8배 오르는 데 그쳤다.
한국 증시의 부진은 2015년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나스닥과의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고, 2019년에는 S&P500과도 멀어졌다. 그리고 2022년에는 닛케이에도 밀리는 상황에 처했다. 결국 지난해 한국 증시는 글로벌 주식 시장에서 가장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게 되었다.
고경봉 증권부장은 "지난 10년간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며 한국 증시가 저평가된 요인을 분석했다. 그는 2015년 경상수지 흑자 폭이 역사적으로 가장 컸던 시기였음을 지적하며, 그 이후 수출산업이 계속해서 감소세를 보였다고 설명한다. 휴대폰과 LCD, PC 등 우리 주력 전자제품은 정점을 찍고 감소세로 돌아섰다. 조선, 철강, 석유화학 산업도 중국에 추월당하는 현실을 맞이했다.
"미국에 성장률이 뒤지는 저성장 쇼크가 현실이 됐다"는 고경봉 증권부장의 말처럼 한국 경제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사회 곳곳에서 구조개혁을 서둘러야 한다는 경고가 터져 나왔지만, 공허하게 메아리쳤다. 19대 국회 후반기 여야는 역대급 정쟁에 여념이 없었고 경제 살리기 법안과 노동개혁 법안은 뒷전이 됐다.
2015년 미국과 일본은 설비 투자를 대폭 늘렸다. 이 시기에 빅테크는 질주하기 시작했고, 미국 실리콘밸리 거물들이 모여 오픈AI를 설립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정부 압박에 사상 최대 배당금을 주주들에게 풀었고 결국 투자를 줄여야 했다. 2015년 우리 기업의 총투자율은 1998년을 제외하면 산업화 이후 가장 낮았다.
지난해 한국 증시 성적은 그 연이은 패착이 10년간 켜켜이 쌓인 결과다. 반도체가 흔들리고 한동안 구원투수 역할을 하던 2차전지마저 꺼지자 한국 증시의 민망한 체력이 드러난 것이다. 한국 증시 대표주 더 나오려면, '왕따' 현상은 유동성 투입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와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10년 전 20%에 못 미쳤다. 하지만 계속 불어나 지금은 30%를 웃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가 삐끗하면 증시가, 아니 나라가 망할 판이다. 향후 10년, 20년이 더 걸리더라도 이 왜곡된 산업 구조를 바꿀 수 있도록 혁신 기업을 찾아서 길러내고 우리 증시를 떠받치게 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에선 이미 장외에서도 삼성전자 몸값을 추월하는 기업이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스페이스X와 바이트댄스의 몸값이 삼성전자 시가총액을 넘어섰고, 10년 차인 오픈AI도 삼성전자를 따라잡을 기세다. 우리가 지금부터 바뀌지 않으면 다음 10년의 한국 증시도 답이 없다.